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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학생들이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그 준수를 요구하라

공진성 2014. 9. 4. 14:47

상식을 상식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집단이 있다. 바로 대학생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될 것임이 지극히 당연한데도 초중등교육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 지식과 기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성인이 되어 이런저런 형태로 노동을 할 때 자기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다. 명색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그런 지식과 기술을 뒤늦게 가르치는 것도 어색하지만, 장벽은 또 있다. 여전히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이미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장차 노동자가 될 것임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중에 행여 경영자가 되었을 때 노동()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상식의 확인과 회복을 위한 오랜 노력이 있었다. 노동자 전태일은 지극히 상식적인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태일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부당한 법도 문제이지만, 있는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법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사고파는 갑과 을의 관계에 적용되어야 할 최소한의,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기준을 정해두고 있다. 그것은 을을 이롭게 하거나 갑을 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 전체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것이다. 법이 지닌 집단적 차원의 이 합리성 때문에 때로는 법을 지키는 것이 개인적 차원에서는 손해일 수 있다. 갑의 입장에서만 그렇지도 않다.


시간제 노동을 하는 대학생이 고용주에게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그것은 당사자인 학생에게 심리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지만, 행여 밉보여서 일자리를 잃기라도 하면,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된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착한학생들은 스스로 작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문제를 회피한다. 그러나 고용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불편한 일이므로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뿐더러, 개인적 불편함과 손해를 무릅쓰고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일이므로 지극히 도덕적인 행동이다. 그런 도덕적 행동을 할 때, 칸트에 의하면, 비로소 사람은 존엄하다. 대학에서 이미 노동자이며 장차 노동자가 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일지 모른다.


노동력을 사고파는 법적 관계에 들어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이 직접 법적 주체로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계약의 내용도 모르면서 서명하기에 급급한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계약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명하는 종이가 아니라, 갑과 을이 가진 권리와 의무를 꼼꼼히 밝혀두는 매우 중요한 문서이다. 아무리 적은 시간, 짧은 기간 일하더라도 그 관계를 명토 박아 두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때 그 계약은 법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것을 따져 묻는 것이 개인적으로 불편하고 이롭지 않더라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14년 9월 1일자 <조대신문> 사설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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