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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정규직은 비정규적이어서 슬픈 것이 아니다

공진성 2013. 5. 23. 16:38

 

 

무엇이 아님을 뜻하는 한자 ‘비(非)’가 그 앞에 붙은 단어들은,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그 속성이 아직 모호한데도, 이미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다. 권력은 그 ‘무엇’을 특권화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비-무엇’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기피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무엇’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무엇’의 특권을 정당화한다. ‘무엇’을 추구하는 우리의 욕망은 권력의 효과이자 동시에 권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이 욕망의 정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저 ‘무엇’을 추구할 때, 우리는 ‘비-무엇’을 배제하여 ‘무엇’을 특권화하는 권력의 공범이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은 ‘정규직’을 특권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정규직이 아닌 것의 속성이 매우 모호한데도, 그것을 뭉뚱그려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정규직을 지향하게 만들어 그것의 특권을 정당화한다. ‘고귀함은 이루기 어려운 만큼 드물지만’(스피노자), 되기 어렵고 드물다고 해서 모두 고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력은 정규직을 그저 되기 어렵고 드물게 하여 고귀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고귀한 것을 추구하게 하여 다시 정규직이 되기를 어렵고 드물게 만든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구분을 버리고 직업에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추구할 때 우리는 권력이 만들어낸 이 부당한 순환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비정규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삶은 슬프고 고달프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두고 비정규직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찬양하는 것은 분명히 기만이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정규직이 되거나 집단적으로 비정규직을 철폐하여 모두 정규직이 되는 것이 그 삶의 슬픔과 고달픔을 없애주는 것도 아니다. 슬픔과 고달픔의 원인은 직업의 비정규성에 있지 않다. 세상에는 많은 비정규적 직업 활동들이 있지만, 그 모든 비정규적 직업 활동이 슬프거나 고달프지는 않다. 기만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듯 때때로 비정규직은 자유롭기도 하다. 슬픔과 고달픔은 직업의 비정규성에서 오지 않고, 다른 것에서 온다. 바로 직업 활동 고유의 고귀함에 대한 사회적 불인정과 최소한의 인간적 삶이 보장되지 않는 저임금이다.

 

각각의 직업 활동 고유의 고귀함을 추구할 줄도, 인정할 줄도 모르는 사회에서는 그저 고임금이 인정받고 저임금이 무시된다. 이것이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가짜 문제의 실체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임금의 직장을 추구하고,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추구하는 모순과 혼란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어떤 분야에서건 직업적으로 이룬 고귀함에는 마땅한 사회적 인정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정규직’일 필요는 없다. ‘정규직’은 사회적ㆍ경제적 차별을 위한 허구적 기호에 불과하다. 사회적 인정의 문제는 사회적 인정을 통해, 경제적 안정의 문제는 최저임금의 인상과 기본소득의 보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정규직’을 향한 맹목적 투쟁은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양산하면서 그 삶을 슬프고 고달프게 할 것이다.

 

 

※ 이 글은 2013년 5월 27일자 <조대신문> 사설로 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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