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유럽에서 광주를 생각하다(1) 그 도서관은 아직 거기 있을까 본문
그 도서관은 아직 거기 있을까
연재를 시작할까 합니다. 가물가물해진 기억의 끈을 조심스레 붙잡고 유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결국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저를 통해 광주가 유럽을 만났고, 또 유럽이 광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서관을 좋아합니다. 도서관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곤 할 정도입니다.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사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일명 ‘독서실’과 도서관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도서관 이용과 관련한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처음으로 개가식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는 온갖 책이 학문분야별로, 그리고 주제별로 나뉘어 꽂혀 있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의 서재에서 보던 책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책에 감탄하다 못해 심지어 숙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후로 저는 주제별로 나뉜 서가들을 옮겨 다니며 책을 구경했습니다. 읽지 않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책 구경에 맛을 들이고 나니, 이제 서점에 있는 새 책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그래서 학교 앞 서점을 출근도장 찍듯이 들렀고, 나중에는 주인보다 더 빨리 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에도 참으로 여러 도서관을 찾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그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빌리거나 보기 위해 찾아갔지만, 한번 분위기가 맘에 들면 이제 그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매일같이 가곤 했습니다. 어느 도서관에 매일 가고, 또 하루 종일 그곳에 머무르려면, 그 도서관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우선, 교통이 편리해야 하고 뭘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공간이 넓으면서도 아늑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적당히 많아서 약간의 경쟁심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경쟁자가 잘 생기고 스타일까지 좋은 사람이라면 더 좋겠죠. 하지만 그런 도서관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도 자료를 찾기 위해 들른 도서관은 많았지만, 정작 눌러앉아 장기간 공부를 한 도서관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유학 시절에 베
단과대학 도서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쌓여 있는 책들 위에 이런 쪽지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일까지 치우지 말아 주세요, 제발!” 학기말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찾아놓은 책들을 몽땅 빌려갈 수는 없고, 빌려갈 수 있더라도 단 하룻밤만 빌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읍소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서가에서 찾은 책들을 책상 위에 쌓아놓고 뒤적거리기도 하고 읽기도 하고 공책에 베끼기도 하고, 때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토론도 하면서 ‘함께’ 공부합니다. 기껏 개가식 도서관에 와서 자기 책을 읽거나 영어 문제를 푸는 한국 대학생의 모습과 사뭇 대조적입니다. 책과 씨름하는 모습이 서로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칸막이를 세우지는 않습니다. 청각적 방해 요소는 카펫이나 흡음판 등의 시설을 통해, 시각적 방해 요소는 부분조명을 통해 줄입니다. 이런 ‘열린’ 도서관을, 그리고 그런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저는 좋아합니다.
2013년 여름에 다시 베를린을 찾았습니다. 그 사이에 훔볼트대학은 드디어 자기의 중앙도서관 건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워낙 독일 학생들의 겉모습이 늙수그레하기도 하지만 나이 많은 학생도 많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중앙도서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몇 가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베를린의 도서관들에 공통적인,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외투와 가방 등을 사물함에 넣고 필요한 것들만 투명한 비닐가방에 넣어 입장하는 방식입니다. 능숙하게 출입구에서 투명 비닐가방을 하나 얻어 사물함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에 작은 자판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실리콘 귀마개를 파는 자판기였습니다. 예전에도 귀마개를 사용하는 학생들을 간혹 보기는 했지만, 자판기까지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조금 신기했습니다.
열람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열람실 안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중앙도서관이 없는 동안 도대체 다들 어디에서 공부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용 규칙도 엄격해진 듯했습니다.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울 때에는 반드시 떠난 시간을 표시하도록 했고, 한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제복 차림의 요원들이 책상 위의 물건을 치웠습니다. 또, 3층부터 5층까지의 열람실은 저녁 7시까지 훔볼트대학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했습니다. 여전히 독일의 대학 도서관에 유형의 칸막이는 없지만, 이용자 수의 증가와 함께 무형의 칸막이가 새롭게 생겨난 듯했습니다. 아침 일찍 도서관의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귀마개를 꽂고 공부하는 독일 학생들의 모습이 칸막이 안에 파묻혀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독일에서도 대학생의 수가 과거에 비해 늘어나자 부족한 공간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고, 그렇게 차지한 자리에서 남과 담을 쌓고 외롭게 ‘자기’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어가는 듯했습니다.
예전에 훔볼트대학 중앙도서관이 세 들어 있던 국립중앙도서관은 세입자가 나간 틈을 이용해 전면적인 보수를 하여 2013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주말에 실시되는 도서관 안내 프로그램을 이용해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겉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의 본래 모습 그대로였지만, 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 가운데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밖에서 보는 건물의 층수와 안에서 보는 건물의 층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건물을 설계할 때 책을 찾기 편하도록 책꽂이 높이를 낮추고 층고도 함께 낮춰서 밖에서 보기와 다르게 내부의 층수가 훨씬 많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에 대한 공습이 이루어졌을 때, 사서들이 목숨을 걸고 당시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3백만 종의 책과 자료를 30개의 수도원과 성, 그리고 폐광 등으로 옮겼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도서관의 구조와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책들이 범상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도서관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은데, 지면이 금세 부족해졌네요. 파리에서 만난 도서관 얘기는 다음에 계속 해야 하겠습니다. ‘씨떼’라고 불리는 파리 국제대학생기숙사촌에 있는 작은 도서관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이름을 가진 매우 큰 도서관 이야기입니다. 기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