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정치는 어려워

선거법 개정을 위한 전원위원회 개최에 부쳐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선거법 개정을 위한 전원위원회 개최에 부쳐

공진성 2023. 5. 8. 17:12

선거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언론의 요청도 있지만, 국회의 요청도 있다. 작년 11월에도 그런 토론회가 지역에서 열렸고, 참석해서 내 생각을 말했다. 학자로서 나는 특정 선거 제도의 효과, 장단점, 도입 가능성,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에 대한 의견을 말할 뿐, 어떤 제도를 특별히 더 선호해 도입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자에게 의견을 묻는 사람은 그런 영양가 없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나 우리에게 유리한 제도를 옳거나 좋은 제도로 포장해 권위 있는 누군가가 말해주기를 바란다. 예의 토론회에서 나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주최 측의 의도에 따라 마치 그런 것처럼 보도되었다.

비례성과 대표성의 강화가 개혁의 방향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것도 어디까지나 정치적 결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최근 헌법재판소가 검수완박법안의 통과 과정에서 소수정당의 심의ㆍ표결권이 침해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법 자체의 효력을 문제 삼지는 않음으로써 입법부의 권한을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는 5천만 국민을 한 명이 대표할 수도 있고, 300명이 대표할 수도 있고, 350명이 대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를 작은 선거구로 나눠 한 명을 뽑을 수도 있고, 더 큰 선거구로 나눠 여러 명을 뽑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을 하나로 묶거나 권역으로 나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방식으로 선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제도가 특별히 더 민주적이거나 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지이다. 이에 대한 합의가 우선이다.

최근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비례대표 의석을 50석 늘리는 안은 정식으로 내놓기도 전에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되었다.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동결한 채 내놓은 세 개의 안이 과연 27일부터 시작될 전원위원회를 거치며 과연 어떻게 바뀌게 될지 궁금하다. 어떻게 변형되더라도 지난번 개정 때와 같은 파국 없이 합의에 도달하기를 바라지만 합의가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여당과 야당, 거대정당과 소수정당, 도시에 지역구를 둔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 수도권 의원과 지방 의원, 호남 의원과 영남 의원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기 때문이다.

국회의 합의 불능 상태와 그로 인한 기능 부전 상태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중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양대 정당 내부의 주류 당원들이 주문하는 통일성과 일사불란함인데, 이것이 당내에서는 이른바 색깔 논쟁으로, 당 밖에서는 서로 상대를 거부하는 비토크라시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합의 불능과 기능 부전으로 이어지니 참으로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반대 여론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의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의원 수가 늘어나면 오히려 의원 한 명의 권한이 줄어든다고 설명해도 다수 국민이 가진 거부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300명도 의견 일치를 못 보는데 350명으로 늘어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두 개의 정당도 서로 합의를 잘 못 하는데 서너 개의 정당이 교섭단체가 되면 합의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런 우려 때문인 것 같다. 연합정부 구성을 강제하는 의회중심제로 바꾸면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일반 국민은 국회와 의원들에 대한 불신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그래서 의원 정수 확대와 비례성 강화에 반대한다. 심지어 맨날 싸우기만 하는 국회의원들 수를 오히려 줄여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국민의 불신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자신들의 집단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관해서는 쉽게 합의하면서, 괜히 불필요한 싸움에 열을 올리며 대립하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나는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것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국민들이 직접 싸우지 않도록 대신 싸워주는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정말 그런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세상에서 갈등을 없앨 수는 없다. 문제는 갈등을 통제하고 조율할 리더십의 부재이다. 아무쪼록 이번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입법부의 재구성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국민의 신뢰를 더 잃지 않기만을 바란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