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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도 너무 바쁜 요즘 학생들

공진성 2022. 12. 14. 07:35

지난 9월 함부르크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날 찾아온 한두 명의 손님이 아니라, 또래 학생을 만나 교류하고 싶다고 광주를 찾아온 열일곱 명의 독일인 손님이었다. 어쩌다가 올해 4월 처음 연락을 받고 두 도시의 학생들을 서로 만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사실 그때는 크게 걱정을 안 했다. 학생으로 가득한 대학에서 외국에서 온 또래를 만나보고 싶어 할 학생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오히려 어떻게 선발할지가 고민이었다.

방문 시기를 결정할 때부터 조금씩 걱정스러운 요소들이 드러났다. 우리의 방학 때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방문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방학 때여야 학생들에게 시간 여유가 있어서 쉽게 참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는 쪽에서 그때는 어렵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학 때라고 사정이 별로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학생들에게는 어차피 시간이 없다.

방문 시기가 9월로 정해지자 독일 쪽에서 서둘렀다. 한국 학생들을 화상으로라도 먼저 만나 광주에서 무엇을 함께 할지 이야기해보고 싶어 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정치외교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먼저 참여 의향을 물었다. 아직 여름 방학 때였는데, 학생들은 역시나 알바와 다른 일로 바빴고 개강 후의 일을 아직 결정할 수 없었다. 개강 전에 프로그램 준비를 위한 화상회의를 개최하며 참가 학생을 모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 외국인을 만나 영어로 뭔가를 하기를 어렵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개강 전에는 물론이고 개강 후에도 수강신청 변경과 추석 연휴가 끝날 때까지는 온전히 학교에 있지 않았다. 두 도시의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교류 프로그램을 구상하여 진행한다는 애초의 계획은 파트너 학생의 모집 단계에서부터 난항에 빠졌다. 결국 함부르크 학생들이 광주에 도착한 15일부터 약 10일간의 일정은, 물론 그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거의 즉흥적으로 진행됐다.

본격적인 교류의 시간이 시작됐고, 그때까지 어찌어찌하여 열일곱 명의 한국 학생이 모였다. 이제 광주와 함부르크의 학생 서른네 명이 틈나는 대로 만나 함께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우정을 쌓으면 됐다. 당연히 학기 중이니까 평일 오전과 오후에는 시간 내기 어려우리라 예상했다. 그래도 평일 저녁, 금요일과 주말에는 함께 무언가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 나의 기대와 예상은 첫날 저녁부터 깨졌다. 학생들은 평일 저녁에도 알바와 다른 약속으로 바빴고, 주말에는 더욱 알바와 다른 약속으로 바빴다. 2주간의 시간을 비우고 광주에 온 함부르크의 학생들과 다르게 광주의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소중한 일상이 있었다. 여기에서 다른 일을 위해 시간을 더 빼기란 무척 어려웠다.

학생회가 엠티나 체육대회 같은 행사를 왜 평일에 하는지, 학교가 왜 각종 비교과 프로그램을 수업 시간에 진행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수업이 몰려 있는 요일과 시간이 아니면 어떤 행사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업을 계속 그렇게 볼모 삼다 보면 수업 시간은 그저 학생회 행사나 비교과 프로그램을 위해 임시로 확보해둔 시간이 되진 않을까? 수업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알바에 할애하면 도대체 수업 준비는 언제 할까? 이런 걱정들이 여전히 있지만, 아무튼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를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귀한 시간을 내 교류에 참여해준 학생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이 글은 2022년 11월 14일 발행된 <조대신문> 1146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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