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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6.1 지방선거 평가와 향후 과제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6.1 지방선거 평가와 향후 과제

공진성 2022. 6. 27. 16:51

이번 지방선거는 모두가 알다시피 대선이 끝나고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때,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때 치러졌다. 온전한 지방자치가 아니기 때문에도 원래 중앙정치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인데, 대선 직후에 치러진 지방선거여서 더욱 중앙정치의 강한 영향 속에서 치러졌다. (지방자치가 자체의 내부 논리에 따라 실시되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다른 시기에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구조적 조건은 정권교체였다. 새로 출범한 중앙의 행정 권력에 줄을 대야만 지방이 한 푼이라도 예산을 더 따올 수 있고, 그래야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한 푼이라도 더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방의 주민들은 새로운 여당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서 선거 과정을 지켜봤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불완전하게나마 지방자치 제도가 부활한 지 30년이 흐른 뒤에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자치선거였다. 그 사이에 각 지역의 지방자치 역량도 조금은 더 커졌고, 지방 의정과 행정을 통해 길러진 직업 정치인의 수도 늘어났고, 그들을 통해 지방자치의 효과를 체감한 주민의 수도 늘어났다. 그래서 지방 행정이 단순히 중앙 행정에 종속되어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더 많은 예산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쓰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것이 단체장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주민들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바로 그런 실력에 대한 인정이나 기대에 힘입어 수도권에서 일부 민주당 소속 단체장 후보들은 비록 중앙의 행정부 수장이 교체되었지만 당선될 수 있었다. (물론 국민의힘이나 다른 정당 소속 단체장 후보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들을 21세기형/행정가형/실사구시형 정치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현실을 과잉 단순화하여 해묵은 -또는 진보-보수이념의 틀 안에서 다루면서 관념적 해결만을 추구하는 20세기형 정치인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사안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 해결을 또한 추구하는 21세기형 정치인이다.

올해 3월과 4월 내내 인수위 구성과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 총리 및 장관 인선 문제로 시끄러웠고, 대통령 퇴임/취임과 미국 대통령의 방문 등의 이슈가 지방선거 전의 여론을 장악함으로써 6.1지방선거는 사실상 고유의 쟁점 없이 치러졌다. 구도와 쟁점 면에서 이렇게 불리한상황에서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대선의 연장전으로 치르려고 했다. 국민의힘이 새 행정부 출범이라는 호기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 이상, 민주당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과잉정치화 전략의 국민의힘 측 상징인 김은혜 후보가 진 것은, 뒤집어 얘기해서, 민주당의 그런 과잉정치화 전략과 결을 달리하는 김동연 후보가 이긴 것은 지방자치선거를 보는 유권자의 시각이 온전히 중앙권력에 종속되어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주와 전남 지역의 이번 지방선거 과정을 살펴보자. 그런데 연구실 안에 앉아 있는 나로서는 언론의 보도 너머의 현실을 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가 지극히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것 역시 사실이다. 지방선거에 대한 언론의 상투적 보도는 공천 잡음에 관한 것으로 시작된다. 흔히들 지방선거의 시작을 공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지방선거는 더 일찍 당원의 모집에서 이미 시작된다. 공천신청자가 적은 정당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겠지만, 당의 공천이 당선을 거의 보장하고, 그래서 공천신청자가 많고, 그래서 경선이 본선보다 더 치열한 민주당의 경우에는 당원 모집이 경선 승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작년 늦여름까지 당원 모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렇게 형성된 사조직을 중심으로 당의 공천이 진행될 때, 이른바 민주적공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적인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당원이 사전에 모집되어 관리되고, 이 당원들의 참여 속에서 공천신청자들 간에 경선이 실시되고, 한 명이라도 당원을 더 모은 예비후보자가 당의 공천을 받고, 그런데 하필 그 당이 해당 지역에서 패권적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사실상 그것이 당선을 의미한다면, 이것이 과연 민주적 공천이고 민주적 선거일까?

그러나 공천과 관련한 사안이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각 당이 정한 기준에 따라 어느 공천신청자가 탈락하면, 그 신청자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 속해 있던 정당을 비민주적이라고 욕하며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당 입장에서는 차라리 경선을 실시하여 탈락시키면 무소속 출마를 법적으로 막을 수 있겠지만, 그 후보의 사조직 규모가 크다면 경선을 통해 탈락시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경선의 실시가 민주적인 것이고 무소속 출마자가 나오는 것이 당의 경선이 불공정하게 진행되었다는 증거일까? 경선의 불공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공천 배제에 불만을 품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사람들이 흔히 제기하는 것이 그 기준이 자의적으로 또는 갑자기 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핵심은 그 기준에 따르면 자신이 배제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과연 그 후보는 무엇을 준비했을까? 바로 권리당원이다.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모집한 당원들을 중심으로 지방의 공천 경쟁이 이루어질 때, 당이 공천 기준과 규칙을 자의적으로 갑자기 바꾸는 것은 과연 비민주적인 일일까? 당의 조직 문화와 관행을 혁신하기 위해 당은 공천과 관련해 도대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까? (물론 지역위원장인 국회의원이 자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극히 사사롭게 공천심사를 진행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말도 아니고, 그런 사천(私薦)에 항의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후보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주의 민주당 공천 과정은 전남의 그것과 조금 달랐다. 민주당 광주시당은 이미 작년 12월에 광역의회 스무 곳 가운데 청년경쟁선거구 네 곳과 여성경쟁선거구 네 곳을 지정했다. 권리당원을 미리 모을 수는 없는, 그러나 신인이 출마를 준비하기에는 충분히 이른 시기에 그와 같은 결정을 발표했다. 물론 그것은 기존에 그 선거구에서 활동하며 권리당원 관리를 해온 청년이 아니거나 여성이 아닌 사람에게 일종의 정치적 사망 선고였을 것이다. 이런 식의 제한경쟁 선거구 지정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과정에서 지역위원장인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전략적 행위 없이는 현재와 같은 당원 모집 방식과 공천 경쟁 방식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정치인의 지방의회 진출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과 여성은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명분일 것이다. 지방의회가 5060 남성 일색이라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활용해 기존의 낡은 방식으로 지역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새로운 사람들로 의회를 채우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과연 비민주적인 것일까, 민주적인 것일까?

광주와 전남의 경우가 다르고 전남 내에서도 시군에 따라 사정이 다 조금씩 다르지만, 지방자치선거는 낮은 단위로 내려갈수록 선거구의 규모가 더 작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유사)매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더해 권리당원을 사적으로 모집하는 관행이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더불어민주당의 이른바 공천 잡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때 당에게 민주적공천을 하라는 요구는 과연 민주적인 것일까? 선거 때마다 나오는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언론 보도가 오히려 공천 잡음을 무기화하여 자신의 협상력을 최대화하려는 낡은 정치인을 돕는 것은 아닐까? 정당의 공천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당원들이 100% 참여하는 민주적방식으로 해야 할까, 아니면 당원의 참여만으로 사실상 최종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은 다소 민망하니까 여론조사를 절반 보태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야 할까? 혹시 우리가 정당의 공천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거대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착각이 지방선거의 공천 과정을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아닐까?

사실 공천 문제는 우리 지역에서 민주당만의 문제였다. 국민의힘과 정의당, 진보당 등의 정당에서는 그런 식의 공천 잡음이, 내가 아는 한, 없었다. 왜 없었을까? 다 알다시피 공천을 신청한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으니까 잡음자체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당들은 당원들이 참여하는 경선을 실시하지 않았으니까, 또는 찬반을 묻지 않았으니까 비민주적으로 공천을 한 것일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말은 경선 자체가 공천의 민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선은 공천신청자가 복수로 있을 때 그 가운데 한 명을 고르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자체로 결코 더 민주적인 방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선이 곧 민주적인 공천 방식이라는 착각 속에서 광주와 전남의 언론과 시민사회는 부지불식간에 사전에 당원을 모집하고 자신이 모집한 권리당원을 동원해 경선에서 승리하고 사실상 당선되는 민주당 지방선거의 공식을 승인해주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경선 잡음을 간단히 민주당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들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 이제는 권리당원 투표나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이 민주적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 정당은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자기의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그들이 알아서 정할 일이고, 그것을 누가 정할지 역시 그들이 알아서 정할 일이다.

민주당의 경선에 일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 결과가 곧 당선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관심을 더 가지면 될 테고, 만약 그런 사람이 꽤 많다면 자연스럽게 본선 경쟁도 어느 정도는 치열하게 벌어질 텐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 않다. 여전히 다른 정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보다 민주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 여기에서 자세히 논하기는 어렵고, 다만 앞에서 얘기한 민주당의 하부구조, 즉 다단계 판매망과 비슷한 조직에도 원인이 있음을 언급하고 넘어가자. 그 결과로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대규모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실상 당선된 사람이 총 68(광주 13, 전남 55)이었다. (무투표 당선 제도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도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광주와 전남만을 놓고 보면 무투표 당선자가 많은 것이 단순히 이 지역에서 민주당이 가진 패권적 지위 때문인 것 같지만, 영남 지역에도 무투표 당선자가 많고, 심지어 수도권에도 무투표 당선자가 많은 것을 보면, 문제의 원인이 다른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유사 다당제 현상의 소멸이다. 과거 3김 시대에는 충청의 자민련 같은 지역 정당 때문에 (양당제와 친화성이 있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 하에서도 전국적으로 보면 마치 다당제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12표제를 실시한 이후에는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의회에 진출하여 다시 다당제 같은 현상이 나타났으며, 2016년 총선 전과 2017년 탄핵 이후 이른바 3지대가 열리면서 지역적으로는 양당제적 상황이,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다당제적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다당제적 상황을 제도화하기 위해 소수정당들이 연합하여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 부족한 결실인 준연동형비례대표제마저 지난 2020년 총선 때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이용해 비례대표 의석을 거의 싹쓸이하면서 무의미해졌다. 급기야 지난 3월 대선 이후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의 합당으로써 이른바 3지대는 사라지게 되었다.

일단 전국적으로 유효 정당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유효 경쟁이 줄어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무투표 당선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수도권의 수많은 무투표 당선자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 두 정당끼리라도 치열하게 경쟁했다면 이렇게 많은 무투표 당선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대 양당이 각자의 당선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서로 담합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것은 양당이 모두 당선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사람들의 집합이 되었음을 뜻한다. 당선과 재선 외에 딱히 다른 목적이 없는 사람들이 거대 양당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경쟁 없이 당선되었다는 것이 곧 그렇게 당선된 후보자에게 경쟁력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경쟁이 치열한 곳의 후보자들이 반드시 경쟁력이 강한 것도 아니다. 그곳에 출마한 후보자의 경쟁력이 약하다고 여겨서 다른 경쟁자들이 나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이 없는 곳에 왜 다른 사람이 도전하지 않았냐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진보정당들은 전국의 무투표 당선지에 후보자를 내지 않았을까? 인물의 부재와 이념의 약화가 모두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진보정당의 기존 이념은 약해지고 새로운 이념적 지향은 아직 불분명하기 때문에 당선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대의명분을 위해 출마하려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경쟁력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당선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더 큰 정당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것이 얼핏 보기에 민주당과 같은 중도개혁 정당 내에 진보적 성향의 인물들이 늘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민주당 자체가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당선가능성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의 집합소가 되는 것이다. 즉 광주와 전남에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유효한 선택지가 민주당 하나뿐이기 때문에 민주당을 선택하는 것이지, 민주당의 노선과 가치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정당의 이념 상실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도 똑같이 겪고 있는 일이고, 그래서 과거에 그 이념의 선전을 위해서라도 당선가능성과 무관하게 헌신하며 출마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거의 없는 것이다. 그 결과가 508명의 무투표 당선자이다.

정당들이 선거 승리 외에 다른 어떤 이념적 지향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각 정당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의 당선가능성만을 우선으로 고려해 더 큰 정당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유효 정당의 수가 줄어들었고, 심지어 형식적으로 경쟁이 있는 경우에도 유효 경쟁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투표에 참여할 동기를 잃게 되었다. 광주와 전남의 다소 상반된 투표율이 단순히 유효 경쟁이 없기 때문에 광주의 투표율이 저조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그래서 일각에서는 다당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근본적 원인은 정당들의 이념 상실에 있다. 정당에 이념적 차별성이 없으면 차별성 없는 후보들끼리 그저 당선만을 위해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후보들에 의해 사적으로 조직된 당원과 유권자들이 그저 최대한 동원될 뿐이다. 주민들에게 영향력 없는 이념을 추구하는 소수정당 후보들과 아무런 이념 없이 당선만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조직력 막강한 후보들의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선거에 특히 조직되지 않은 젊은 유권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전국적으로 지난 지방선거보다 10% 정도 투표율이 낮아진 것은 앞에서 설명한 유효 정당 수의 감소와 그에 따른 유효 경쟁의 감소, 그리고 그 원인인 정당의 이념성 약화 등에 더해 여전한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종속 탓이기도 하다. 대선 직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중앙의 행정 권력을 차지한 국민의힘 쪽으로 지방 유권자의 표심이 조금이라도 더 쏠릴 것을 예상한 민주당 지지자들은 참여의 동기를 잃었고, 그것이 전국적으로 낮은 투표율과 특히 광주에서의 낮은 투표율을 가져왔다. 이런 현상은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싹쓸이한 것에 비하면,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의 승리는 그리 압도적이지 않다. 그것은 국민의힘이 지방자치가 30년 넘게 실시되면서 조금이나마 자기 논리를 가지게 된 것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중앙정치의 잔여 범주처럼 취급한 전략적 오류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영남과 충청에서는 승리했지만,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광주와 전남에서도 사실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희망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국민의힘의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광주와 전남에서 얻은 15.9%18.8%의 표가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선거비용을 온전히 보전 받을 수 있는 15%를 넘긴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15%를 넘길 수 있다는 신호라면 더욱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의 투표율이 역대 최저인 37%를 기록한 상황에서 겨우 15%를 넘긴 국민의힘 주기환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광주에서 얻은 124천여 표보다 무려 5만 표나 적은 71천 표 정도밖에 얻지 못했다. 그에 비해 투표율이 전국 최고였던 전남에서 이정현 후보는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가 전남에서 얻은 145천여 표보다 무려 2만 표나 많은 167천 표 정도를 얻었다. 그런데도 정작 전남의 광역비례대표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104천여 표(11.8%)밖에 얻지 못한 것을 보면, 이것이 이정현 후보 개인의 선전이었지 당의 선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앞으로도 광주와 전남에서 대안정당의 부재 현상이 지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대안정당이 존재하려면 표의 비례성을 제고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정당들이 이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념적 지향이 없으면 정치에 뜻을 둔 사람들이 오직 당선가능성만을 따져 정당에 가입하게 되고, 그러면 100%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더라도 결국 소수정당보다는 다수정당을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반 유권자들의 생각에 정당은 자신들조차 옳다고 믿지 않는 이념을 표방하며, 그래서 자신들조차 그 이념에 복종하지 않는다. ‘내로남불은 바로 정당의 이런 무이념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승리지상주의이다.

민주당의 독점과 대안정당의 부재 속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의 하나는 그동안 지방의회를 통해 성장한 정치인들이 서서히 단체장으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초기에 직업공무원 출신의 사람들이 인생 2모작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단체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 서서히 직업정치인 출신의 사람들이 단체장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지방에서 정치를 자신의 직업적 전망으로 삼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지방정치에 뛰어들 수 있고, 그래야 지방 의정과 행정을 일찍부터 경험한 유능한 직업정치인이 나올 수 있고, 그래야 그들이 주민들의 뜻에 따라 행정조직을 이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변화는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로 지방의회의 구성원이 많이 젊어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만큼 많은 수의 초선 의원이 경험 부족 탓에 과연 행정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하지만 유능함을 갖추는 것은 다선 의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어진 숙제이다. 오히려 초선 의원들이 아직 행정의 논리에 물들지 않아서 견제하기에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의회가 모두 민주당 소속이어서 과연 민주당 소속의 단체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겠냐고 걱정하지만, 의회가 견제해야 할 대상은 행정이지 마찬가지로 행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며 이끌려고 하는 단체장 자체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의회가 모두 민주당 소속인데도 동일한 이념적 지향을 가지고 행정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그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파벌을 형성해 서로 자리다툼이나 하고 행정과 결탁해 자기 지역구에 예산이나 끌어갈 궁리나 할까봐서 걱정이다. 아무쪼록 민선8기 자치단체장들과 의회가 제 구실을 잘 해주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22년 6월 16일 개최된 광주YMCA 104 시민논단을 위해 작성한 발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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