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려워
정치적 명분과 실리 본문
대선 사전 투표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3일 아침,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전격 사퇴했다. 3월 2일 무등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두 사람이 단일화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한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고스란히 윤석열 후보로 이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단일화가 두 사람이 의도한 대로 윤석열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게 될지, 아니면 안철수 후보 지지자의 분열과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을 가져와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이재명과 윤석열,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문제라는 말이 있었다.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 구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 민주당은 국회 다수 의석과 함께 행정 권력을 또 한 번 차지하게 된다. 여기에 이재명이라는 추진력 강한 리더십이 더해지면 전에 없는 권력 독식과 일방통행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에도 우려는 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면서 최소 2년간 ‘식물대통령’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암울한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려면 이른바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일부 원로들의 주장이었다.
먼저 반응한 것은 민주당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다른 후보들에게 제안했고 송영길 대표가 그 제안을 수용해 다시 다른 당과 후보들에게 제안했다. 급기야 지난 달 말 의원총회에서는 통합정부 구성 외에도 개헌을 포함한 정치개혁 의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기까지 했다. 권력 독식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다당제 친화적 제도개혁을 약속한 것이다. 민주당이 과연 선거 후에도 약속을 지킬지, 내부와 외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약속을 지키더라도 과연 그 개혁들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지 여전히 의문이 남지만, 이재명 후보의 ‘정치교체’ 캠페인은 잠시 선거의 흐름을 민주당 쪽으로 돌리는 듯했다. 김동연 후보도 그에 화답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했다.
그러나 지난 3일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선거의 흐름은 다시 야권에 유리하게 바뀐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이제 앞의 우려는 해소된 것일까? 안철수 후보는 자신이 차기 정부의 구성과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 곧 ‘통합정부’이고, 그러므로 ‘좋은’ 정권교체를 의미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국회의원 세 명을 더하고 자신이 총리로서 정부에 참여하더라도 여소야대 구도에는 변함이 없다. 통합정부 구성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야당에서 통합정부 구성에 응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청문회 통과를 자신하지 못해 입각을 고사하거나, 입각하더라도 야당의 검증 공세를 거치며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과거 자신이 비판했던 방식대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될 것이다. 어쩌면 그저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의미에서 ‘통합정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원로들의 우려는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도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안철수 후보로서는 또 한 번 ‘대선후보’로서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여당은 안철수와 이준석이라는 두 명의 이과 출신 차기 대선 후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당을 인적으로 쇄신하여 당에 대한 자신의 장악력을 키우려던 이준석 대표의 계획에는 조금 차질이 생기겠지만, 안철수의 영입을 통해 당 자체는 확실히 반공보수 정당의 면모를 조금은 벗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설령 향후 2년간 윤석열이 식물대통령 신세가 되더라도, 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2년 뒤 치러지는 총선에서 이 새로운 여당은 다시 다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정권 연장도 어렵지 않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새로운 여당에게 유리하게만 시간이 흘러가지 않도록 민주당은 사활을 걸고 싸울 것이다. 그 싸움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당을 주도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진영간의 대립은 격해질 것이다. 영원회귀인 셈이다. 이런 비관적 시나리오 외에 낙관적 시나리오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안철수는 과연 명분을 챙긴 것일까 실리를 챙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