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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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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예감한 미래와 대학 주변의 경제 생태계

공진성 2020. 12. 29. 10:21

우리 대학 주변에 있는 고등학교 담벼락에 현수막이 여럿 붙어 있다. 우리 지역에 소재한 대학들이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내건 홍보 현수막들이다. 입시철이 돌아왔나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과하기에는 불안한 징조들이 엿보인다.

최근 언론을 통해 몇 가지 사실들이 보도됐다. 먼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 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재학생 지원자 수는 34만 여 명에 불과하고, 졸업생을 합쳐도 50만 명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 응시자 수는 이보다 더 적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전체 대입 정원(49만 655명)보다 적은 수이다.

대입 지원자 수가 정원보다 적은 상황에서 지방의 일부 사립대학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커다란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등록금 수입의 감소는 말할 것도 없고, 충원율이 낮으면 교육부의 평가 점수가 낮아져서 국고 지원을 받기 어렵게 되고, 그런 대학의 사정이 알려지면 다시 신입생의 지원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최근 지방의 사립 대학들이 앞다퉈 신입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하다.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을 제공하겠다거나 대학생들이라면 가지고 싶어할 만한 전자기기를 선물로 주겠다는 식이다.

대학이 문을 닫은 곳의 경제 상황을 보도하는 기사들도 나온다.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지역의 경제 생태계가 파괴된 모습은 큰 공장 하나가 문을 닫은 곳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에 고용됐던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어 떠나면 교직원과 학생들을 상대로 하던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떠난 곳에는 ‘임대’ 광고만 나붙는다.

코로나19의 유행이 좀처럼 끝나지 않고 있다. 1학기에 이어 2학기에도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면서 대학을 중심으로 한 경제 생태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교직원과 학생을 상대로 한 대학 주변의 경제가 크게 위축된 것이다. 그러나 진작부터 대학 주변 상권은 학기 단위로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거시적으로 보면 경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일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가 겪게 될 일을 코로나19가 다만 좀 더 일찍 겪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겪게 될 그 일은 무엇일까? 코로나19가 쉽게 종식되지 않겠지만 앞으로 그와 같은 감염병이 반복해서 유행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무시하더라도, 출생율의 감소와 교통ㆍ통신 기술의 발달,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의 수축과 불균형 발전은 예상되던 일이었다. 그런 변화의 흐름에 단순히 공공기관과 대학의 유치 및 보전으로 맞서려는 지방의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학문 생태계를 걱정하는 시각에서는 대학의 생존이나 주변 상권을 걱정하는 논의가 천박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과 전자기기 선물을 주지 않고도 아직까지는 신입생 모집에 큰 어려움이 없는 우리 대학의 입장에서는 이런 논의가 성급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과 지역의 현실을 직시해보자. 정말 장밋빛 미래가 예정되어 있나? 코로나19 덕에 일찍 예감한 미래의 모습을 바꾸려면 지금 움직여야 한다.

기존의 방식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대학과 지역이, 학생과 상인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경제 생태계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속에서 지역 대학의 학문적 방향도 새롭게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20년 10월 5일 발행된 <조대신문> 1127호의 사설로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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