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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코로나 시대, 윤리적 실천의 어려움과 우리의 공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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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윤리적 실천의 어려움과 우리의 공부

공진성 2020. 9. 7. 17:13

지난 27일 광주광역시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올해 23일 광주에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최대 규모의 확진자가 발생한 데 따른 조치였다. 시 당국이 이번 사태를 특별히 심각하게 여긴 이유는 확진자 가운데 일부가 자신의 동선을 숨기거나 거짓 진술을 해서 추가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조치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의 학생 한 명도 이 확진자와 같은 종교시설을 이용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정치적인 이유로 방역당국의 조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100인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비웃듯이 대규모 집회를 하는가 하면, 언론 앞에서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방역당국의 코로나19 검사를 불신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가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에 감염시키거나 양성이 아닌데도 양성으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음모론을 믿지 않더라도 정부의 방역조치에 저항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일부 도시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침해하는 정부의 조치에 저항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방역을 핑계로 정부가 개인의 사생활에 한번 개입하기 시작하면 결국 전체주의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스크를 벗고 광장에 모여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을 양립시키는 것은 인류의 오랜 과제이다. 어느 하나를 우선하면, 다른 하나가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주의자들은 전체주의 냄새를 풍기는 공동체의 안전을 우위에 놓거나 개인의 자유를 무조건 앞세우는 대신에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개인의 자유를 주장해왔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이런 절제된 자유를 추구할 때 타인의 자유도 보장되고 결국 공동체의 안전도 확보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 쓰더라도 코까지 제대로 덮어쓰지 않는 사람, 마스크를 제대로 쓰라고 하는 사람을 폭행하는 사람이 있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추구될 수 있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때에는 개인의 자유가 정당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지극히 타당해 보이는 자유주의적 윤리가 코로나19 시대에 잘 실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적 음모론에 빠져 있거나 권력에 대한 불신이 크면, 행여 자유주의적 원칙에 이론적으로 동의하더라도,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에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자유의 제한에 불만을 표할 수 있는데, 예컨대 고온다습한 여름에 마스크를 써야 하는 나의 불편은 현재적이고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반면, 내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타인이 입게 될지 모를 피해는 잠재적이고 가상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도 사실 마찬가지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위해 내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은 구체적이지만, 내가 맘 편하게 자원을 소비해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됐을 때 지구촌 어느 곳의 타인이 입을 피해는 지극히 추상적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공부는 바로 이 느낌의 차이를 줄여 나와 우리의 윤리적 실천을 가능케 하는 것이어야 한다. 타인이 느낄지 모를 불편함을 스스로 느껴 윤리적 실천을 하는 것이어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껴 윤리적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우리의 공부가 인류의 공존과 공영을 위한 더 큰 실천의 계기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2020년 8월 31일 발행된 <조대신문> 1125호의 사설로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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