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정치는 어려워

등록금 반환이 교육의 질도 높여줄까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등록금 반환이 교육의 질도 높여줄까

공진성 2020. 9. 7. 17:09

한때 ‘운동권’ 학생회라는 말이 있었던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에 학생회는 정치적ㆍ사회적 변혁을 지향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학생운동은 방향을 잃게 되었다. 잠시 과도기적으로 학생자치를 운동 목표로 내걸기도 했지만 1997년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 속에서 대학생 자체가 빠르게 ‘경제적 동물’로 변해갔고, 그에 따라 학생회도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오늘날 대학의 학생회는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이중적인 의미에서 이익집단이다. 노조가 사측의 이익과 대립되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듯이 학생회는 학교나 교수의 이익과 대립되는 학생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러나 동시에 노조가 자기 이익을 위해 활동하듯이 학생회도 자기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가입률이 매우 낮은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학생회는 많은 대학에서 구성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 밖에 있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학생회는 학우들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노력한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유권자의 이익을 위한다면서 이런저런 공약을 발표하듯이 학생회도 선거 때마다 학생들의 ‘복지’를 위한 공약을 발표한다.

학생들의 경제적 이익 보호를 자기 존재의 정당화 근거로 삼은 ‘비운동권’ 학생회와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운동권’ 학생회가 뜻을 모은 쟁점이 ‘반값 등록금’이다.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이 ‘반값 등록금’은 정치적 공약이 되었고 진짜 ‘반값’이 되지는 못했지만 계속되는 등록금 인상에 제동을 거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사태 속에서 잠시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던 대학의 학생회들이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며 다시금 뭉쳤다.

‘반값 등록금’ 운동은 계속되는 등록금 인상에 제동을 걸었고 사립대학의 재정에 대한 공적 관심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특히 지방의) 사립대학에 재정적 타격을 주었고 교직원 수의 감축과 같은 파괴적 구조조정을 유발하기도 했다. 물론 학령인구의 감소와 맞물려 일어난 변화이지만, 이런 변화가 교육의 질에 아무런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등록금 반환 운동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었고 비대면 상황에서 수업의 질 저하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내가 ‘구입’한 ‘상품’의 질이 애초에 공시된 것보다 낮아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판매자’가 ‘상품’ 가격의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 운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운동의 목표가 단순히 지불한 돈을 일부 돌려받는 것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환불’과 함께 교육의 질 제고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또다시 ‘환불요구’를 받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교육의 질 제고에 힘쓰라는 메시지를 대학에 보내는 것이 이 운동의 목적일까?

대학 교육을 마치 판매하고 소비하는 상품처럼 인식하게 만든 기성세대가 먼저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런 인식 속에서 마치 소비자 운동을 하듯이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고 있는 학생들과 학생회도 이 운동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코로나19라는 비상한 사태 속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 수단과 관련해 우리는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할 의무는 대학 본부와 교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록금 반환 운동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20년 8월 3일 발행된 <조대신문> 1124호의 사설로 작성된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