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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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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에세이 번역 책

상황을 주도해야 이긴다

공진성 2020. 4. 6. 09:00

21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코로나19의 유행 탓에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난리들이다.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아무래도 불리한 쪽은 도전하는 사람이다. 일찍부터 정권심판을 이번 선거의 구호로 내걸었던 야당은 예상치 못한 감염병 사태에 무척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이다. 나라 전체가 어려운 때에 정부 비판으로만 일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위기를 경고하는 것도 평화로울 때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정부는 그래도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야당에게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상황을 주도할 힘이 없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개념 세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비르투, 포르투나, 네체시타가 바로 그것이다. 포르투나는 운이다. 운은 좋다가도 나쁘다. 그래서 우리가 어찌해볼 수 없다.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우리에게 결코 쉽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아무리 구애를 해도 언제 우리를 바라봐줄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운명의 장난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 인간의 역량이 비르투이다. 물론 아무리 훌륭한 역량을 갖춘 사람도 운이 도와주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운이 찾아오더라도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언제 불운이 행운으로 바뀔지 모르는 수레바퀴 같은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생각했다. 그러나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대결도 궁극적으로 네체시타, 즉 시대적 상황과 조건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신생군주가 성공하려면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맞춰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황에 끌려다니며 그저 행운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포르투나와 비르투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유행할 것이라는 경고는 있었지만, 하필 이 시기에 신종 바이러스가 유행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유행이 언제 끝날지도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느긋하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감염병의 유행이라는 운명의 장난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유행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개학을 마냥 미룰 수는 없는 일이기에 정부는 초중고교의 순차적 온라인 개학을 결정했다. 대학은 2주 개강을 미뤘다가 일단 온라인 개강을 했고, 몇 차례의 연장을 거쳐 지금까지 온라인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 내용과 형식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예기치 못한 감염병의 유행에 따라 개강을 늦춘 것도, 처음 두 주 동안 온라인 수업을 진행한 것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조치이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지금 상황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다. 방역과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유행이 종식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대학 본부는 교육부의 지침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처음 개강을 늦추고 2주간 온라인 수업을 실시하기로 했을 때는 교육부의 지침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교수와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2주로 끝날 것 같던 온라인 수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제 다른 모드로 수업에 임해야 한다. 교육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상호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대학의 세 주체가 모두 방역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대학 본부는 학사 일정과 관련해 더욱 주도성을 발휘해야 한다. 교수들은 비대면 수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학생들도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동료 수강생과도 협력하여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모두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을 위한 것이다.

※ 이 글은 2020년 4월 6일자 <조대신문> 1120호 사설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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