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정치는 어려워

광주 발전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광주 발전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

공진성 2020. 2. 14. 17:57

오는 613,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이 선거를 통해 광주광역시에서는 시장과 구청장, 시의원과 구의원이 새롭게 선출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회의원도 한 명 보궐로 선출된다. 자치단체장의 경우와 시구의회 의원의 경우에 요구되는 리더십이 다르고, 각 행정구역의 상황에 따라 자치단체장에게 요구되는 리더십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시도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 광주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이 서로 조금 다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글에서는 다소 일반론적이지만 자치단체장에 초점을 맞춰 광주의 발전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1. 개념

먼저, 리더십 개념에 대해 짧게 생각해보고 넘어가자. ‘리더십이라는 모호한 외래어 속에는 다양한 구체적 의미가 숨어 있다. 크게 둘로 나누어 볼 때, 그것은 리더 집단, 즉 지도부를 의미하기도 하고, 리더의 속성, 즉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리더와 관련된 것을 가리키는 한, 또한 팔로워’, 즉 누구를 이끌 것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렇게 개념적으로 분석했을 때,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의미 있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리더십을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은 집단의 문제이다. 리더를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리더는 팔로워와의 관계 속에서 리더인 것이지, 팔로워와 무관하게 리더일 수 없다. 그러므로 리더십을 언제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자치단체장 한 사람을 우리는 선거를 통해 뽑지만, 이로써 교체되는 것은 그를 비롯한 지배 집단이다. 이 집단의 일부는 공식 행정기구 안에서 리더를 도와 일할 수도 있지만, 공식 행정기구 바깥에서 리더를 도와 일할 수도 있다. 자신을 도와 함께 일할 세력을 갖추지 못한 리더를 가리켜 우리는 허약한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리더와 함께 교체되는 지도부와 다르게 정부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관료 조직도 시민과의 관계에서 보면 넓은 의미의 리더십(지도부)에 포함된다. 이 관료 집단은 선출직 공무원인 자치단체장과 그를 도와 일하는 정무직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는 (심정적으로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팔로워이지만, 유권자 집단과의 관계에서는 기능적으로 리더이다. 마찬가지로 자치단체장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는 정무직 공무원도 단체장과의 관계에서는 팔로워이지만, 일반 유권자나 관료조직과의 관계에서는 리더이다. 그렇다면 단체장은 리더이기만 할까? 그는 주어진 임기 동안 지도부 전체와 유권자 집단에 대해 리더이지만, 궁극적으로 해당 지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민 집단의 정치적 의지를 따르는 팔로워여야 한다. 리더십 개념을 이렇게 분석적으로, 그리고 관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이론

광주의 발전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기에 앞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규정이 필요해 보인다. 사실 리더십, 즉 리더의 자질 자체가 상황의 변화에 맞춰 판단을 내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므로, 상황 자체의 성격을 파악하는 능력을 또한 논리적으로 요구하지만, 이 글에서는 필자가 생각하는 이 시대와 상황의 성격을 큰 틀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서 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20144월의 세월호 침몰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20155월과 6월의 메르스 사태이다. 이 두 사건은 우리 시대의 위험이 어떤 것이고, 또한 이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리더십은 해결해야 할 문제, 즉 위험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편의상 시대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 유형의 변화를 세 단계로 단순화하여 설명해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정치공동체가 맞닥뜨리게 되는 위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전쟁이었다. 그래서 리더십에 관한 많은 논의가 군사적 맥락 속에서 전쟁 영웅들의 행동을 예로 들어 이루어지곤 한다. 고대의 전쟁은 영웅들의 일이었다. 한 사람의, 또는 소수의 영웅적 전사들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때 리더십은 곧 영웅성이었다. 지도부는 영웅들이었고, 지도자의 자질은 영웅들이 지닌 초인적 능력과 희생정신이었다. 고대의 전쟁사는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영웅적 리더는 언제나 최전방에 있었고, 죽음을 통해 오히려 불멸성을 얻었다. 이런 영웅 서사는 영웅의 시대가 끝난 후에도 문학 속에서, 그리고 오늘날 대중문화 속에서 반복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지속되는 영웅적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때로는 실제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무기기술의 발전은 전쟁을 대규모 국가의 독점적 활동으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군대는 소수의 영웅적 전사 집단이 아니라, 거대한 관료 조직이 되었다. 모든 거대 조직이 그렇듯이 군대 조직도 철저히 기능적으로 분업화하였다. 이와 함께 정치적 리더와 군사적 리더도 기능적으로 나누어졌고, 군사적 지도부도 작전참모부와 야전사령관으로 나누어졌다. 이제 리더라고 해서 다 똑같은 리더가 아니다. 각각의 리더는 각각 다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과거의 전쟁에서 영웅적 리더는 전장에서 판단의 기능과 전투 수행의 기능을 동시에 해야 했지만, 이제 전쟁에서 판단의 기능과 실행의 기능은 나누어지고, 심지어 판단도 군사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으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전투원의 영웅적 행동은 이제 위험한 행동이 되고, 벙커 안에서 이루어지는 군사적 지도부의 독단적 판단은 영웅적 결정이기는커녕, 자칫하면 전투원과 더 나아가 국민 전체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모험적 판단이 되기 쉽다. 핵무기의 개발과 함께 군사적 지도부의 결정은 점점 더 내리기 어려운 것이 되었고, 더 큰 수단적 합리성과 정치적 합리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거대한 군사 조직들이 서로 맞붙고 국민 국가들이 서로 맞붙는 시대에 지도자와 지도부에 요구되는 자질은 철저히 기능적으로 분업화한 능력, 즉 각자의 기능적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국가 간의 전쟁 시대마저 지나간 오늘날 지도자와 지도부에 요구되는 능력은 과연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두 사건은 이와 관련해 우리에게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이 두 사건은 우리가 맞닥뜨린 두 가지 종류의 위험을 대표한다. 하나는 과거형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형 위험이다. 세월호의 과적이나 고박 불량, 평형수 부족, 무리한 증축, 부실한 선박 검사 등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과거형 위험과 관련된다. 과거형 위험이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미래형 위험은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나 메르스 같은 유행성 질병은 쉽게 예상할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예방하기도 어려운 미래형 위험이다. 오늘날 현실 속에서 개개인의 시민이 맞닥뜨리게 되는 위험의 성격은 혼합적이다. 어떤 위험은 우리의 이른바 안전불감증때문에 생겨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생겨나기도 하고 더 커지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관리해야 하는 위험은 과거와 달리 외적(外敵)’의 형태로 가시화되지 않는다. 현대의 위험은 우리 안에 있다. 한편으로 위험은 우리의 규제 위반과 관리감독 소홀, 부패 등으로 인해 생겨나고, 늦은 판단과 대응으로 인해 커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위험은 우리가 이룬 기술적 발전의 부산물로서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 의도하지 않게 갑자기 등장한다. 이런 이중적 성격의 위험은 이중적 성격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오늘날 리더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근대적 분업의 이상에 따라 콘트롤 타워로서 사회의 각 부문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스스로 콘트롤타워가 되려는 욕심을 버리고 위험의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판단과 실행의 권한을 위임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익숙한 것이 아니어서 현장에서 위험과 직접 마주하는 사람이 아니면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거버넌스, 또는 협치가 강조되는 이유이다. 지도부의 구성원이 모두 전체의 일부분으로서 주어진 기능에 충실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 따라 마치 고대의 영웅적 전사들이 전장에서 스스로 판단과 실행을 하듯이 위험의 최일선에서 스스로 판단과 실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상부의 지시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며 책임만 면하려는 관료 집단의 모습을 우리는 세월호 사태에서 목격했으며, 환자는 점점 늘어가는데 관할부처가 어디인지를 먼저 따지고 시민들과의 정보 공유를 주저하는 정부의 모습을 우리는 메르스 사태에서 목격했다. 우리는 부패한 리더십에도 분노하지만, 이처럼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리더십에도 실망한다.

3. 현실

광주의 현실은 어떠한가? 위의 논의에 근거해 광주의 현실을 한번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지방분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분권의 필요성을 낳는 상황의 변화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분권이 필요한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게 된 위험이 내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이 바깥에 있을 때에는 더 큰 단위로 뭉쳐서 그 위험에 맞서야 하지만, 위험이 우리 안에 있을 때에는 그런 근대적 방식의 대응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며 심지어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는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많은 위험은 훨씬 더 구체적이어서 지역적 대응과 사안 사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작은 영웅들을 요구한다. 이 새로운 영웅들을 세우는 것이 지역의 리더십에 요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역의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위험의 인식과 관련된다. 오랜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생겨난 습관은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와 위험을 바깥에서 찾게 한다. 그래서 과거에 독재자에 맞서 싸우기 위한 시민의 최대 동원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지역의 경제적 낙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권자의 최대 동원과 이를 통한 국가 예산 확보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위험과 문제를 이렇게 인식했을 때 요구되는 리더십은 권위적인 영웅적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런 리더십은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험과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미래형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과거형 위험들을 생산해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리더십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다. 권위적인 영웅적 리더십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데, 그것은 리더-팔로워 관계를 위계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먼저 리더십, 즉 지도부의 재생산을 가로막는 것이다. 리더는 리더 역할을 실제로 맡을 때에 비로소 리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영웅적 리더에 대한 기대나 판단과 결정의 기능을 독점하는 권위적 리더십의 추구는 후대에 활동할 리더십을 인적으로 재생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관료 집단이나 일반 시민들과 같은 현재의 잠재적 리더들의 기능마저 판단 능력이 제거된 팔로워로 고정시킴으로써 미래형 위험에 사회 전체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런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의 하나는 우리가 여전히 지역의 문제를 중앙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맥락 속에서 읽어내지 못하고 외부의 시각으로, 국가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는 투표할 때 국가적 차원에서의 의미와 효과를 고려한다. 과거의 투표 행태가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연결되었다면, 오늘날의 투표 행태는 예산 확보 투쟁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행태의 반복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구체적 문제와 그 맥락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외적의 침입 가능성 때문에 불안하거나 독재 정권의 압제 때문에 힘들지 않다. 그저 예산이 부족하거나 재정독립성이 부족해서 어렵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삶은 우리 사회 내부의 구조적 불안정성, 관료 조직의 경직성과 타성, 작은 조직들 내부의 불합리한 관행과 부패, 시민들 사이의 단절과 무관심, 위험의 상호 전가, 그리고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비롯하는 각종 지대추구적 행동들 탓에 불안하고 힘들고 어렵다. 이런 문제를 구체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세력으로서의 지도부가 필요하다. 먼저, 이 지도부는 행정 조직을 청렴한 혁신 조직으로 바꾸어야 한다. 현장에서 스스로 문제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유연한 관료 조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므로 리더는 기존 관료조직의 논리에 스스로 깊게 빠져 있어서도 안 되고, 관료조직의 저항에 굴복할 정도로 연약해서도 안 된다. 다음으로, 이 지도부는 세력을 확대하고 재생산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곳의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판단과 결정의 권한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을 넓은 의미의 리더십(지도부)의 일부로 흡수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리더는 다시 자신을 선출해준 시민들에 대해 팔로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광주는 우리의 문제를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중앙의 시각에서 일반화하여 그저 숫자로만 파악하고 손쉽게 관료조직을 이용해 해결하고자 하는 리더와, 그와 달리 문제의 맥락과 지역적 특수성은 이해하지만 세력을 형성하지 못해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리더를 만나왔다. 이제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

 

※ 이 글은 광주광역시의회와 (사)지역미래연구원이 주최한 정책토론회를 위해 2018년 1월 작성한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