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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 위험 사회에서 새학기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공진성 2020. 2. 7. 11:52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들 말한다. 이 말은 앞날에 대한 현재의 예측을 바꿔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다소 뒤쳐져 있는 후보자가 선거 결과는 투표함을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얘기할 때, 그는 미래의 불확정성에 역전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 반대로 변화에 대한 의지 없이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듣고서 사람 앞날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할 때, 그는 앞날의 불가지성을 체념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가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침묵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이 정말 알 수 없는 것인지 먼저 확인해 봐야 한다. 감히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알 수 없다고 예단하고서 숙명론자가 되는 것은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가진 대학의 구성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단순히 미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해 의지만으로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지성인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의지로 낙관하더라도, 이성으로 비관할 수 있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하면서 최초 발병지인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비상이다. 17세기에 유럽에 근대적인 국가 관념과 함께 국경이 등장했지만, 국경이 막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의 이동을 근본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고, 종교와 같은 사상의 유행을 막을 수 없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래 질병도 대륙과 국경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치료도 할 수 있고 예방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이해가 늘어난 덕이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어설픈 이해가 기후변화나 질병의 확산 같은 지구적 위험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런 위험을 통제하고 줄이는 일 역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지난 십여 년 사이에 대학에 외국인 학생이 부쩍 많아졌다.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지구촌 시대가 열린 것과 무관하지 않지만,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부족해진 대학 입학 자원을 외국인 학생으로 보충하려는 대학의 적극적인 의지도 함께 작용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들여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의 문을 걸어 잠가서는 안 된다. 대학이 대학(university)인 이유는 그 보편성에 있기 때문이다. 홍콩 시위의 성격을 두고 작년에 중국 출신 유학생들과 한국 학생들 사이에 다소 폭력적인 갈등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 유학생을 대학이 거부해서는 안 된다. 대학이 더욱 상호 이해의 장이 되어야 한다.

아직 개강 전이고 상황이 여러모로 불확정적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인해 한국 학생들이 중국 출신 유학생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지는 않을지 적잖게 우려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합리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세상의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 이해를 발전시키고 사회에 제공해야 할 책임이 대학에 있다. 지구적 연관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오늘날 우리는 고립해 살 수 없고 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수많은 당사자들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만 지구적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방학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새학기를 잘 준비하자.

※ 이 글은 2020년 2월 3일 발행된 <조대신문> 사설로 게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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