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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서사에서 부흥의 서사로

공진성 2020. 2. 7. 11:44

최근 우리 대학에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지난 달 26일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우리 대학의 임시이사 체제를 끝내고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달 16일까지 정이사 후보들을 포함한 정상화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지역의 언론은 벌써부터 학내 구성원들이 이사진 구성에 과연 합의할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의심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의 임시이사 체제가 들어서기 전의 정이사 체제에서도 개방이사의 선임과 기존 이사의 연임 문제를 둘러싸고 구성원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타협 없는 대립 속에서 결국 임사이사 체제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 달 26일과 27일에는 학생회 선거가 치러졌고 총학생회를 비롯한 각급 학생회의 내년도 회장과 부회장이 선출되었다. 경쟁으로 치러지는, 그래서 때로는 비방도 난무하는 다른 대학의 학생회 선거에 비해 조용히 치러진 우리 대학의 학생회 선거에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건물 출입구에 진을 치고 통행하는 학생들을 붙잡아 실시하는 투표는 참여율 50%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그만큼 학생들이 학생회 구성의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학생회 간부들의 공금 유용에 대한 의심도 학생회 활동 자체가 공익적 성격보다 간부들 자신의 사익 추구 성격이 더 강하다는 판단에서 비롯한다.

지난 달 29일 우리 대학의 법인 이사회는 101일 치러진 선거에서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은 민영돈 교수를 총장으로 임명했다. 대학의 새로운 출발이 더 미루어질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이루어진 조치일 것이다. 사실상 신임 총장이 임명한 사람들로 집행부가 이미 구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신임 총장을 임명한 것은 새로운 집행부 출범에 마침표를 찍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론은 강동완 전 총장 측의 반발에 근거해 파행을 예상하고 있다. 지금껏 학내 문제에서 당사자들이 대승적 차원의 양보나 타협, 학교의 평판을 고려한 자제를 보여준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무리한 예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대학의 크고 작은 변화를 바라보는 주위의 이런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은 대학 구성원들의 혁신 의욕을 떨어뜨리고 보신적 행위를 부추긴다. 이유 없고 근거 없는 시각은 아니지만, 그런 시각이 사태를 또한 악화한다. 현재 우리 대학에 관한 이야기들은 주로 내홍’, ‘파행’, ‘갈등’, ‘격랑’, ‘분란’, ‘소송’, ‘비리’, ‘난제등의 단어로 얼룩져 있다. 일종의 몰락 서사인 것이다. 몰락의 서사 속에서 희생과 헌신, 양보와 타협은 일방적 희생의 요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몰락의 서사를 부흥의 서사로 바꿀 수는 없을까?

서사의 힘은 강하다. 1950-60년대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은 성서 속에 나오는 출애굽 서사에 힘입어 공고한 백인 중심의 사회에 변화를 일으켰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고 사막을 지나며 온갖 고난을 겪은 끝에 신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는 억압과 차별 속에서 싸우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끝내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새롭게 임명된 총장과 집행부, 조만간 새롭게 구성될 이사회, 그리고 새롭게 출범할 학생회가 모두 대학의 새로운 서사 창조에 힘써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립대학 설립 이야기를 포함하는 대학 부흥의 새로운 서사를 쓰는 데에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부흥의 서사 속에서 비로소 희생과 헌신도, 양보와 타협도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19년 12월 2일 발행된 <조대신문> 1117호에 사설로 게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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