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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논리적인 주장은 그저 비논리적인 주장일까

공진성 2015. 4. 13. 08:26

비논리적인 주장은 그저 비논리적인 주장일까

 

논리적인 사고와 주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게 해준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다. 오는 4월 개통 예정인 호남선 KTX의 운행 노선과 관련한 문제였다. 사건의 발단은 코레일이 신설 호남선 KTX일부를 서대전역을 경유하게끔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었다. 즉각 반대 주장이 제기됐다. 서대전역을 경유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근거가 지극히 비논리적이었다. 서대전역 경유를 반대하는 주장의 논리적 구조는 간단했다. 신설 호남선 KTX가 서대전역을 경유하는 것은 일단 약속을 어기는 것이며(1), 고속철을 저속철로 만드는 것이고(2), 호남민에게 손해가 되므로(3), 서대전역 경유 계획을 백지화하고 호남선 KTX를 애초의 계획대로 운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속이니까 무조건 지키는 것이 옳다는 주장의 어리석음은 이미 25백여 년 전에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통해 밝힌 바 있으므로 이에 관해서는 여기에서 더 언급하지 않겠다. 나머지 두 가지 반대의 근거에 대해서만 짧게나마 따져보고자 한다.

 

 

 

 

서대전역을 경유하면 저속철인가?

 

호남선 KTX저속철이 된다고 주장한 사람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눈물 젖은 호남선이라는 표현과 함께 저속철이라는 표현은 이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았다. 코레일은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전체 열차 가운데 약 20%를 서대전역을 경유하게 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저속철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이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에 대해 사실이지 전체에 대해 사실은 아니다. 80%고속철은 분명히 남아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서대전역을 경유하는 것과 고속철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서대전역 경유를 반대한 사람들은 이 분명한 사실을 호도하고서 서대전역 경유=저속철이라는 부당한 등식을 만들어냈고, 그 말에 속은 주민들은 저속철이라는 가짜 이유에서 서대전역 경유에 반대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실 저속철의 부분적 유무가 아니라 80% 고속철의 실제 운행 횟수였다.

 

고속철만 개통되면 호남지역은 발전할까?

 

연초에 진짜’ KTX가 시험운행을 시작했을 때 언론매체들은 마치 대단한 변화라도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여기에서도 부당한 등식은 사용됐다. ‘변화=발전이라는 등식, 더 나아가 발전=모두의 발전이라는 등식이다. 고속철이 개통되면 분명히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동이 편리해지는 만큼 수도권 집중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발전이 있는 경우에도 그 발전의 혜택이 자동으로 호남민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공동의 이익은 부분들 사이에 불균등하게 발생하는 이익과 손해를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장치에 의해 가능하지, 결코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고속철 개통 자체가 호남민 일반에게 그저 이익만 되지 않듯이, 그것이 서대전역을 경유한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호남민 일반에게 그저 손해만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손해는 비논리적인 주장을 함으로써 생기게 되었다.

 

비논리적인 주장은 또한 해로운 주장이다

 

최종적으로 호남민이 원하던 결과가 나왔다. 서대전역을 거치게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왜 다들 기뻐하지 않는 걸까? 심지어 속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과연 누가 누굴 속인 걸까? ‘서대전역 경유=저속철=호남 손해라는 부당한 등식을 고수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대전역만 경유하지 않으면 어떤 결정이든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용자의 이익이었다. 만약 서대전역 경유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용산역 직행 열차의 횟수를 늘리고 서대전역 경유 열차의 요금을 낮출 것을 요구했더라면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가격 선택의 폭도, 시간 선택의 폭도 모두 넓어지는 이익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대전역 경유만을 맹목적으로 반대한 나머지 호남민은 서대전역을 경유하는 KTX 노선은 전부 잃고 용산역 직행 KTX는 기껏해야 (주말 호남선 기준으로) 4회 더 얻는 사실상의 손해를 입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이제 와서 국토부와 코레일의 꼼수라고 비난하는 정치인과 언론인은 도대체 무슨 염치로 그러는 걸까? 비논리적인 주장은 동시에 해로운 주장이다.

 

 

※ 이 글은 2015년 2월 16일자 <광주드림> 15면에 실린 칼럼입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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