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정치는 어려워

[칼럼] 박수 본문

논문 에세이 번역 책

[칼럼] 박수

공진성 2014. 12. 22. 09:06

박수

 

 

우리말로 박수라고 부르는 행위는 분명히 전래의 관습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에 적어도 궁궐에서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의미에서 손뼉을 쳤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박장대소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봐서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 과정에서 두 손바닥을 마주치는 일은 분명히 있었겠지만, 의례적으로 손뼉을 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한국말에서는 치는행위보다 손뼉이 더 강조되지만, 서양에서 손뼉은 소리를 내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박수갈채를 뜻하는 유럽어 단어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향해(ad) 소리 나게 내리친다(plaudere)는 뜻의 라틴어 동사(applaudere)에서 나왔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치고 때리고 두드린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마치 노크하듯이 책상 위를 두드리고,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주자들은 활로 보면대를 두드리며, 딱히 두드릴 도구가 없는 연주자들은 발이라도 구른다. 핵심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두 손을 이용할 수 없을 때에는 한 손만으로, 그 한 손조차 자유롭지 않을 때에는 몸의 다른 부분을 이용해 어떻게 해서든지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처럼 온 몸을 이용해 소리를 내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마도 긍정과 찬성, 칭찬과 환영일 것이다. 박수가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일 때, 박수에는 감정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자연의 법칙이 적용된다. 먼저, 박수의 속도와 세기는 감정의 격렬함에 비례해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사그라지는 박수 소리는 감정의 사그라짐을 뜻한다. 그래서 박수 소리가 잦아들면 박수 받는 사람은 슬퍼지게 마련이다. 박수 소리가 계속 커질 수는 없다. 이것 역시 결코 피할 수 없는 자연 법칙이다. 우리가 아무리 박수 받는 사람의 기쁨을 위해 더 크게 손뼉을 치고 싶어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박수 받는 사람이 그 때를 알고 일찍 자리를 떠나주어야 서로 좋다.


박수는 우리의 감정이 그렇듯이 지극히 모방적이다. 남들이 손뼉을 치니까 덩달아 치게 되고, 그렇게 함께 손뼉을 치면서 우리는 엉겁결에 무엇인가에 자의반타의반으로 동의하게 된다. 다들 손뼉을 치는데 혼자서 손뼉을 치지 않기도 무척 어렵고, 다들 동의하는데 혼자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사회적 동의라는 것은 이처럼 강제와 자유의 묘한 혼합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치껏 남들보다 조금 늦게 손뼉을 치기 시작해 일찍 치기를 멈추고, 남들보다 조금 작은 소리로 손뼉을 치면서 마지못한 동의를 표시한다.


그런데 꼭 남들보다 먼저 손뼉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 연주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언제 끝나는지 정확히 몰라서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고, 그 박수 소리에 놀라서 덩달아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마음으로 조롱하며 박수의 제 때를 정확히 알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남들의 박수와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크게 손뼉을 치며 브라보를 외치는 바람잡이도 있다.


감정의 표현이 지나치거나 반복되면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하듯이, 손뼉을 칠 만한 사안과 때가 적절히 구분되지 않으면 박수의 의미도 사라진다. 칭찬도 자꾸 하면 욕처럼 들리듯이, 박수도 아무 때나 하면 별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고, 도리어 야유처럼 느껴지게 된다. 손뼉을 치지 않을 수 없다면, 손뼉을 치는 행위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의 행동은 능동이 아니라 수동이며, 긍정이나 부정의 표현이 아니라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무능력의 표현이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물개처럼 손뼉 치는 모습을 보며 비웃기도 하고, 그 사회에서 누군가가 손뼉을 성의 없게 치다가 숙청 당했다며 수군대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손바닥을 의미 있게 부딪치고 있을까.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악수(握手)를 잡는다고 말하지 않듯이, ‘박수(拍手)를 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박수 친다는 그릇된 표현에서 이미 우리의 생각 없는 박수가 드러난다.


※ 이 글은 <광주드림> 2014년 12월 22일자 "딱꼬집기"에 실린 것입니다. (링크) 신문사에서 붙인 제목과 소제목이 글의 그나마 부족한 개성을 더 없게 만드는 듯하여, 원고 그대로 올려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