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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려워

[사설] 까다로운 유권자가 지방정치의 수준을 높인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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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까다로운 유권자가 지방정치의 수준을 높인다

공진성 2014. 5. 27. 14:39

민주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무도 특권을 굳이 먼저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참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대중에게 정치에 참여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기에게 그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란 어렵다. 참정권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주장했다. 정치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누가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 또 그들 가운데 누가 더 나은지 정도는 분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종의 타협책으로서 대중에게는 정치에 직접 참여할 권리 대신에 참여할 사람을 선택할 권리, 즉 투표의 권리가 주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 투표의 권리조차도 지금처럼 모든 성인 남녀에게 부여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1948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선거가 치러졌다. 헌법을 제정할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였다. 모든 성인 남녀에게 처음부터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그 후에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권리를 잠시 빼앗기기도 했지만, 그 외의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는 계속 보유했고,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권리도 결국 되찾았다. 민주화 이후에 국민들은 더 나아가서 후보자를 결정할 권리도 요구하게 되었다.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공천의 과정에 개입했고, 개방형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기도 했다. 대중은 그저 수동적으로 차려진 밥상에서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는 존재에서 어떤 음식으로 밥상을 차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오는 64일에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민주화 이후에 부활하여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것도 어느새 벌써 여섯 번째이다. 2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법도 한데,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중앙 정치에만 쏠려 있어서인지, 지방 정치, 특히 지방 의회정치는 아직도 많이 위태롭다. 유권자의 관심이 적기 때문에 후보자로 나서는 인물들이 부실하고,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또 멀어진다. 지방선거의 투표참여율이 겨우 50%를 웃도는 상황이니, 지방 정치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밥상은 이미 차려졌다. 음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밥상을 물리면, 처음엔 식욕이 없다고 여기겠지만, 나중에는 밥을 먹을 줄 모른다고 여겨 밥상을 아예 빼앗을지도 모른다. 울며 격자 먹기 식으로 그나마 맛있는 음식을 골라 먹으면 그 음식을 좋아하는 줄 알고 계속 그 음식을 차려낼 수도 있다.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맛이 있으면 있다고, 없으면 없다고, 다른 음식을 원하면 그렇다고 표현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메뉴를 구성할 때 우리의 선호와 의지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소수의 취향대로 계속해서 밥상이 차려질 것이다. 이번 선거의 밥상은 이미 차려졌다. 이제 할 일은 밥상을 받는 일이다. 그리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재료의 원산지와 상태, 사용한 조미료, 맛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여전히 밥상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 이 글은 2014년 5월 26일자 <조대신문> 1051호의 사설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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