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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범죄 예방, 통제가 능사는 아니다

공진성 2013. 10. 5. 15:40

 

 

 

대학에서 성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대학 캠퍼스라고 하는 물리적 공간에서도 그렇고,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대학 사회에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 사회 일반의 현상이 대학에서도 나타나는 것뿐이다. 다만 대학 사회가 특별히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곳이 이른바 지성의 전당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대학을 규범적으로 지성의 전당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대학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은 우리 사회의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힘과 정치적 힘의 논리에 휘둘리고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아예 물리적 힘의 논리에도 휘둘리고 있다. 당위적으로는 지성이 힘이 장악해야 할 대학을 현실적으로는 경제력과 정치권력이, 그리고 때로는 물리력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정치적 힘이나 폭력배의 힘이 아닌 경제적 힘이 지배해야 하고, 종교는 그 어떤 세속적 힘이 아닌 믿음의 힘이 지배해야 한다. 정치 역시 경제적 힘이나 물리적 힘, 믿음의 힘이 아닌 투표의 힘이 지배해야 하고, 대학은 돈의 힘, 믿음의 힘, 정치적 힘, 물리적 힘이 아닌 지성의 힘이 지배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은 어떤 힘이 지배해야 할까? 규범적으로 말해서 당연히 사랑의 힘이 지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다른 가치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하다. 성을 돈의 힘이 지배하고, 권력이 지배하고, 심지어 무력이 지배하고 있다.

 

대학에서 성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특별히 대학이 타락해서가 아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범죄의 현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규범을 어기는 것을 범죄라고 한다면, 규범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시장과 교회, 의회와 학교를 범죄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환경에서 그 어떤 범죄라고 대학에서인들 일어나기가 어렵겠는가. 그러므로 대학에서 발생하는 범죄에만 주목하지 말고, 대학에서 지성의 힘이 아닌 다른 힘들이 지배하는 범죄그 자체에도 주목해야 한다. 상업적인 광고가 넘쳐나고, 포교하는 사람들이 배회하며, 당파적 정치구호들이 울려 퍼지고, 힘을 과시하는 행위들이 너무도 쉽게 자행되는 지성의 전당에서 성관계를 폭력적으로 지배하려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칫 이 문제를 매우 편리하게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통제를 강화할수록 그만큼 우리의 자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숙사 통금을 강화하고,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통제하고, 학교 곳곳에 경찰인력을 배치하면 성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사람들을 아예 만나지 못하게 하지 않는 한 통제를 통해 성범죄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신체적 안전뿐만 아니라 자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의 자유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러나 성적인 의미의 자기뿐만 아니라, 대학인으로서 지성적 의미의 자기도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것 역시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 이 글은 2013년 9월 23일자 <조대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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