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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영어계급사회

공진성 2012. 8. 30. 10:31


영어 계급사회

저자
남태현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2-02-0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리는 왜 영어에 목을 맬까?누가 대한민국을 영어 광풍에 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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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유럽 귀족층 사이에서는 프랑스어를 쓰는 것이 대유행이었습니다. 러시아, 프러시아(나중에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 심지어 미국에서도 귀족-특권층들은 주로 프랑스어로 대화를 했습니다. 프러시아의 유명한 황제인 프리드리히 대제도 모국어인 독일어는 하인들에게나 예외적으로 썼습니다. 러시아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모국어로 쓴 소설은 대부분 하류로 취급받았고, 귀족들은 아예 자녀들에게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9쪽)

 

"수능은 보통 500점 만점이고 그 중 영어는 50문제로 100점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영어가 주요 과목일 수밖에 없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치러졌던 학력고사는 340점 만점에 영어가 60점이었죠. 그때도 영어는 늘 학생들의 큰 골치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영어의 비중은 그때에 비해 더 커졌습니다. 학력고사 체제에서 총점의 17.5%를 차지하던 것이 수능이 도입되고 나서는 20%를 차지하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2.5%라는 것이 수치상으로는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단 1~2점에 당락이 좌우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가볍게 볼 수치가 아닙니다."(10-11쪽)

 

340점 만점에서 20점이 체력장, 190점이 국영수, 나머지 130점이 이른바 '암기과목'이었던 것 같다. 나는 매월 국영수 과목만 대상으로 치르는 300점 만점의 모의고사는 좋아했지만, 이른바 '암기과목'이 포함된 중간-기말고사는 무척 싫어했다. 오늘 외우고 내일 잊어버릴 것을 도대체 왜 억지로 외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것 외에는 외우기가 싫었다. 순간암기능력으로 측정하는 시험점수 따위에 연연해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후회는 없다. 그때 억지로 외웠어야 했던 것들을 나는 살면서 필요한 대로 더 기쁘게 외우고 있다. 아니, 자연스럽게 필요해서 찾아보고 사용하다보니 외워졌다. 특히 싫어했던 한국사와 세계사도 관심이 생겨서 자주 찾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중요한 인물명과 지명, 사건명, 연도 등이 외워졌다. 후회는 없다. (갑자기 왜 딴 소리?)

 

"사정이 이러하니 너도나도 영어공부에 목매는 것이 어찌 보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또한 이상한 것이 과열된 영어공부 현상을 보면서 망국병이라고 불러도 별로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들 문제는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입니다.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고 다들 그걸 아는데 아무도 고치지는 못한다, 좀 말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그 무엇인가가 문제를 풀기 힘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3쪽)

 

"이 책의 결론은 우리의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꼬드겨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그 사기 말입니다. 이러한 사기가 이처럼 크게 성공하고 있는 까닭은 다들 이것이 사기인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의 문제가 아닌데 교육의 문제로 접근하니 영어 망국병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영어 망국병은 결국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의 문제이자, 영어로 갈라진 계급 간의 갈등인 것입니다. ...... 우리의 영어 문제는 영어를 비롯해 많은 것을 누리는 계급과 그러지 못하는 계급 간의 긴장, 그리고 후자가 전자를 따라가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믿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영어 계급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죠."(14쪽)

 

 

"아랍어, 중국어, 인도의 힌디어, 한국어, 이란어, 러시아어, 터키어, 이 언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미국 국무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학습을 장려하는 언어들입니다. 우수한 고등학생이 학기 중이나 방학 때 이 언어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선발된 학생들은 대학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한 학기나 1년 동안 현지에 가서 연수를 받기도 합니다. 물론 학비는 무료입니다. 이 언어들은 미국 사람들이 배우기 힘든 언어이기 때문에 특별히 어린 학생들을 교육해서 나라의 인재로 쓰자는 취지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 각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미국으로서는 각 나라의 언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정보요원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여러 정보기관들은 외국어 교육을 중시합니다. 그리고 한국어는 그러한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언어죠. 한국이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어는 그만큼 미국인들로서는 배우기 힘든 언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21-22쪽)

 

그래! 국가가 배우도록 장려해야 할 언어는 바로 그런 것인데! 무엇이 공익에 부합하는지, 전 국민이 영어를 잘 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배우기 힘든 언어를 배우도록 장려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교육에서도 전인적 성장은 도외시하고 기능적 분업을 추구하는 한국인들이 왜 외국어에서만큼은 영어에 '몰빵' 할까?

 

"사람들은 대부분 원래 되지도 않는 것을 하면서 안 되면 좌절합니다. "나는 아무리 해도 OOO처럼 안 돼"라고. 그리고 그것을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자기 탓이라고 하기에는 처음부터 사회의 요구가 무리였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오늘도 다시 마음을 다스리고 더 좋다는 영어 교재를 사들이고, 더 유명한 영어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이번에는 끝장을 보자는 결연한 결심과 함께요.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합기도가 안 는다고 좌절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꽃꽃이가 잘 안 된다고 슬퍼했을까요? 과연 몇 명이나 널뛰기가 안 된다고 밤늦게까지 연습을 했을까요? 다 잘할 수도 없고, 다 잘할 필요도 없는 영어를 다들 열심히 하고, 혹은 한 번이라도 신경 쓰고 하는 것은 참 기가 막힌 사기인 것입니다."(58-59쪽)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한다고 학생들이 외국 기업에 취직을 하거나 유학을 가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아, 이건 정말이지 눈 한 번 또는 두 번만 감았다 뜰 시간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농담이죠. 될 턱이 없죠. 아시잖아요? 주변을 돌아보세요. 누가 그렇게 영어 강의 덕에 그 정도로 영어가 늘었답니까? 게다가 언제부터 대학이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곳이 됐습니까? 대학은 학생들의 영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죠. 물론 가르치는 학과는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영문과이지 간호학과는 아닐 것입니다."(78쪽)

 

"외국 학생들을 위해 영어 강의를 해야 한다는데요, 영어 강의를 한다고 그들이 한국으로 올까요? 왜 호주나 홍통(미국과 영국은 제외하고서라도) 대신 한국으로 올까요? 세계의 학생들이 왜 요리를 공부하러 프랑스에 갈까요? 대답은 하나입니다. 바로 강의의 질과 주제인 것이죠. 어떤 언어로 가르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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