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의 본질을 생각해보자
아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도 아직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섣불리 다음 시대를 예상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에 우선 집중하자.
코로나 시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의 본질을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직장생활의 본질이 사무실에 나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데에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담당하는 일을 어디에서건 하는 데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매주 정해진 시간에 예배당에 나와 앉아 다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데에 있는지, 아니면 어디에서건 으뜸이 되는 가르침에 따라 삶을 사는 데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학생활의 본질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학생에게 대학생활은 지금까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많은 사람을 배제하며 대졸자끼리 공유하는 ‘학번’을 얻기 위해 대학에 가고, 고액연봉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고 ‘더 좋은’ 학벌의 대학에 가며, 동아리 활동과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선배, 후배, 동기들과 어울려 밤새 놀기 위해 대학에 가지는 않았나? 출석 자체를 위해 강의실에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고,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시험에서 남보다 1점이라도 더 얻으려고 애쓰며, 그런 자신의 노력을 헛되게 하는 조별과제를 싫어하지는 않았나?
이번 학기 우리 대학 어느 수업의 중간시험에서 학생들이 서로 답을 공유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이 과연 문제일까?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르는데 교수가 학생들의 부정행위 가능성을 애초에 예상하지 못한 것이 문제일까? 남들은 모두 정직하게 시험을 치르는데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이 답을 공유한 것이 문제일까? 다른 학생이 (부당하게) 높은 점수를 받으면 상대적으로 내 점수가 낮아지도록 만든 상대평가 제도가 문제일까? 학생들이 지식을 공유했어야 마땅한데 안타깝게도 정답만을 공유한 것이 문제일까? 과연 공부의 본질은 무엇이며, 또 시험의 본질은 무엇일까?
최근에는 군대에서 만난 선임병과 후임병이 공모하여 대입시험을 대리로 치른 사건도 벌어졌다. 이 사건은 우리 시대의 고등학교 공부와 대입시험, 대학생활과 대학졸업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고등학교 공부는 대입시험을 치르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고, 대입전형은 대학이라는 서열화한 상품을 구입할 능력과 자격을 확인하는 정교한 절차이고, 대학생활은 그 절차를 요령껏 통과한 사람들이 다시 졸업장을 받고 취직을 하기까지 필요한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비본질적인 것들 속에서 우연히 간접적으로 얻게 되면 다행인 것이 오히려 공부의 본질인 자신과 세상에 대한 앎이다.
비본질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을 압도해버린 상황에서 부정(不正)은 과연 무엇일까? 대리시험은 부정이고, 입시교육은 부정이 아닌가? 정답 공유는 부정이고, 정답 사유는 부정이 아닌가? 과연 무엇이 부정이고, 무엇이 부정이 아닌가? 비본질적인 것에 집중해 부정 여부만을 따지느라 정작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코로나 시대에 대학과 공부와 시험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영어점수가 영어실력보다 중요할 수 없고, 학벌이 학력보다 중요할 수 없으며, 대학생활이 대학공부보다 중요할 수 없다. 세상이 그렇지 않다고 핑계 대며 본질을 계속 소홀히 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2020년 5월 25일자 <조대신문> 제1122호 사설로 작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