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수영장
<카모메 식당>의 한 장면이다.
유럽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수영장 풍경이다.
한국 수영장의 풍경과 다른 부분은 1) 사람들이 수영모를 쓰지 않는다, 2) 물 위에 라인을 구분하는 줄이 없다, 3) 물을 첨벙이며 자유형이나 접형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수영모도 쓰지 않고 물안경도 쓰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의 수영장에서는 심지어 나같은 대머리에게도 (나는 평형밖에 할 줄 모르는데) 수영모를 쓰기를 강요하고, 물 위에 독서실 칸막이같은 줄이 있으며, 사방으로 물을 튀기며 사람들이 대개 자유형을 (드물게 폼 잡기 위해 접형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여름철 야외수영장에서밖에는 도저히 수영을 할 수가 없다. 물론 그곳에서도 수영모를 쓰기를 강요받지만, 적어도 내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로막는 라인은 없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쉬지 않고 자유형만 해대는 사람도, 그래서 그 연쇄고리에 스무스하게 끼어들 수 없으면 아예 수영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어려서부터 실제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실전처럼 야영훈련을 한다고 한다. 캠핑은 그런 문화에서 발달한 것이다. 그 반면에, 한국에서는 야영(캠핑)의 겉모습만 수입하여 모든 고가의 장비들을 사서 차에 싣고 가서 배부르게 먹고 색다르게 놀다 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작 재난이 닥쳐서 야영을 해야 할 때, 김병만처럼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유형과 접형은 실제 상황에서 아무 쓸모 없는 영법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고개를 쳐들고 물위에 오래 떠있는 것일 텐데, 한국에서의 수영은 모조리 경기용이다. 정작 경기에 나가는 사람도 없지만, (최소한 동네 수영장에는)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힘들게 몸을 움직이면 운동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몸을 움직였다는 사실에서 만족을 찾는 이상한 비합리성이 최소한 운동과 관련해서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한국 수영장 문화에 불만이 많다. 수영하고 싶은데 수영할 곳이 없다.